AI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을 시뮬레이션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하며, ‘디지털 휴먼(Digital Human)’이라는 새로운 존재 유형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디지털 휴먼은 실제 사람처럼 말하고, 움직이며,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가상 존재로, 인공지능, 3D 그래픽, 음성 합성, 모션 캡처 기술 등이 융합되어 구현됩니다. 이미 광고, 방송, 엔터테인먼트, 고객 응대, 교육 등 다양한 산업에서 디지털 휴먼이 활용되고 있으며, 사람과 가상의 경계가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은 산업적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시키는 동시에, 정체성, 진정성, 인격권 등의 복잡한 윤리적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디지털 휴먼 기술의 현재와 활용 사례
디지털 휴먼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삼아 만들어진 ‘버추얼 트윈’ 형태이며, 둘째는 아예 새로운 외형과 성격을 가진 ‘가상 인물’입니다. 전자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디지털 복제를 통해 CF, 영화, 팬 소통 콘텐츠 등에 활용되고 있으며, 후자는 광고 모델, 쇼핑 호스트, 고객센터 상담원, 교육 콘텐츠 진행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실제 사람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한국의 ‘로지(ROZY)’가 있습니다. 로지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20대 여성 디지털 인플루언서로, SNS 활동은 물론 실제 브랜드 광고 모델로 활동 중이며 수십 개의 기업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 외에도 넷플릭스 드라마에서 디지털 배우가 실존 인물을 대체하거나, 방송사에서는 뉴스 진행자로 디지털 휴먼을 시범 도입하고 있습니다. 고객센터나 은행, 공공기관에서는 3D 휴먼 챗봇이 민원 응대나 안내 역할을 하며, 사용자와 음성 및 표정 기반의 상호작용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디지털 휴먼은 낮은 비용, 고효율, 24시간 가용성이라는 장점 덕분에 점점 더 많은 영역에 침투하고 있으며, 미래에는 교육, 의료, 심리 상담 등 인간적 상호작용이 요구되는 영역에서도 도입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디지털 휴먼 기술이 제기하는 주요 윤리 문제
디지털 휴먼의 활용이 늘어날수록 가장 먼저 제기되는 문제는 ‘진정성’과 ‘인격성’에 관한 질문입니다. 사용자들은 디지털 휴먼이 표현하는 감정이나 반응을 실제 인간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으며, 이로 인해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흐려지게 됩니다. 이는 특히 청소년, 고령자, 감정적으로 취약한 계층에게 잘못된 사회적 관계 경험을 유발할 수 있으며, 인간 대 인간 관계의 구조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또한 실존 인물의 외모나 목소리를 무단으로 복제해 만든 디지털 휴먼은 ‘퍼스널 아이덴티티(개인 동일성)’ 침해라는 법적 논란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이미 고인이 된 인물을 디지털로 되살려 영화에 출연시키는 사례는 감동과 상업적 가치 두 측면 모두에서 주목받지만, 당사자의 생전 의사와 유족의 동의 여부, 초상권 침해 문제 등 복잡한 법률적·윤리적 문제가 따라붙습니다.
더 나아가, 특정 성별·인종·외모 기준에 편향된 디지털 휴먼이 반복적으로 생산될 경우, 현실 사회의 고정관념과 차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이상적인 외모’를 정형화하거나, 특정 성역할을 강화하는 형태의 디지털 휴먼은 사회적 다양성과 포용성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처럼 기술은 가치중립적일 수 있지만, 그것을 설계하고 사용하는 인간의 의도가 투영되는 만큼, 디지털 휴먼 기술은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기준 위에서 다뤄져야 합니다.
디지털 휴먼의 미래 가능성과 책임 있는 활용 방안
디지털 휴먼은 향후 콘텐츠 제작의 자동화, 소비자 맞춤형 마케팅, 언택트 시대의 감성 인터페이스로 진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교육 현장에서는 다문화 가정 아동을 위한 다국어 디지털 교사, 심리 치료에서는 환자의 감정 상태를 지속적으로 체크하는 정서형 상담자 등으로 응용될 수 있으며,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의 정보를 지속적으로 설명하고 안내하는 의료 도우미로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술의 책임 있는 설계’입니다. 디지털 휴먼이 생성되고 운영되는 과정에서, 데이터 출처의 투명성, 초상권 및 저작권 보호, 알고리즘의 공정성, 사용 목적의 명확성 등을 법과 제도로 관리해야 합니다. 특히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트윈의 경우, 생전 동의 절차, 활용 범위, 사후 삭제 가능성 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어야 하며, 이 기준은 기술 발전 속도에 맞춰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사용자 역시 디지털 휴먼을 ‘도구’로 인식할 수 있는 정보 리터러시가 요구됩니다. AI 기반 가상 존재가 실존 인물과 어떻게 다른지, 어떤 기준으로 설계됐는지를 알리는 ‘설명 가능성’은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의 출발점이 됩니다. 이를 통해 디지털 휴먼이 인간을 대체하거나 왜곡하는 존재가 아닌,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고 보완하는 동반자로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디지털 휴먼은 인간 중심 기술의 가장 진화된 형태 중 하나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윤리적으로 설계되고, 사회적 신뢰를 얻느냐에 따라 이 기술은 콘텐츠 산업을 넘어서, 인간과 기계가 감성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갈 것입니다.